*****기 행 개 요*****
▩기 행 지 : 달성 묘골
▩일 시 : 2013. 04 .26(금)
▩기행 코스 : 낙빈서원
▩기행 시간 : 0시간 0분
▩날 씨 :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 조금은 추운 날
▩기행 후기 : 강정보 녹색길을 걸으며 녹색길 시점인 묘골의 낙빈서원을 한번 둘러본다.
**낙빈서원
하빈면 묘리 소재의 낙빈서원은 단종조의 사육신을 모시고 있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여 보위에 오르자 하위지(河緯地),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등 육신은 절개를 지켜 복귀 운동을 도모하던 중 김질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어 참형과 3족을 멸하는 가혹한 형벌로서 혈손마저 끊어지게 되었다.
이들 육신 중 박팽년의 혈손은 모계의 향리인 하빈에 세거하게 되었는데 그의 혈손인 박계창 때에 와서 사우를 세우고 박팽년을 향사하였다. 선조 때 계창(繼昌)이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대문 밖에서 사육신이 함께 오위(五位)를 베풀고는 함께 향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 성주의 한강 정구가 “오위를 사삿집에서 한꺼번에 향사하는 것은 제례에 맞지 않으니 마땅히 별묘를 세워 향사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 후 1679년(숙종 5)에는 사당을 세워 봉사해 오다가 1691년(숙종 17)에는 강당과 함께 하빈사를 완공하였다. 1694년(숙종 20)에는 ‘낙빈’이라고 사액되었다.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가 1924년에 박씨문중에서 재건을 논의하여 1924년 현재의 위치에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원래의 위치와는 다르고 또 사당을 세우지 못하고 재실형식의 간단한 건물만 세웠다. 1998년 달성군에서 해체복원하였다. 낙빈서원의 사당은 1971년 육선생 초모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고보조 및 도지사, 군수의 지원으로 1982년 별도의 육신사를 만들어 사육신의 위패를 모셨다. 현재 낙빈서원에서는 향사를 드리지 않고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낸다.
'◆ 기행 앨범 > ♣ 구름에 달 가듯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목정을 찾아서 (0) | 2013.04.26 |
---|---|
삼가헌을 둘러보고 (0) | 2013.04.26 |
묘골마을의 태고정을 둘러보고 (0) | 2013.04.26 |
묘골마을의 육신사를 찾아서 (0) | 2013.04.26 |
도곡재를 둘러보고~~~ (0) | 201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