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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행 앨범/♣ 구름에 달 가듯이

황계 계곡을 찾아서

 

**** 기 행 개 요 ****

*** 기 행 지 : 합천 용주 황계계곡

*** 일     자 : 2013년 03월 04일(월)

*** 후     기 : 봄기운 맞이하러 나들이 겸해서

 

**합천 황계폭포(黃溪瀑布)

 

경남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에 있는 황계 폭포(黃鷄瀑布)는 합천읍에서 남서쪽 합천댐 방향으로 약 12Km 떨어져 약견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 입구에 있는 못골재 아래 골짜기 황계리에서 개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시비(詩碑)와 자연정(紫煙亭) 정각이 있고 그 위쪽에 황계폭포가 있다.

 

황계폭포는 20여미터 높이로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진 2단 폭포이다.

 

구장산(龜藏山)과 허굴산(虛堀山)계류에서 발원하여 용의 허리처럼 계곡을 감돌아 힘찬 굉음을  내며 절벽위에서 떨어진다.

 

하단 폭포 아래의 소()는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기에 지금도 이곳 폭포수에 세수를 하면 범상한 아이를 득남(得男)할 수 있다는 미신이 있다.

 

특히, 이곳 인접은 고려(高麗) 말엽, 무학대사(無學大師) 박자초(朴自超)가 악견산 주위마을에서 태어난 곳으로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많은 도력을 수련 한 곳으로 유명하다.

 

옛적 이곳을 찾은 선비들은 이런, 승경(勝景)에 도취하여 저 유명한 중국의 여산폭포(廬山瀑布)에 비유하였으나 황계폭포의 더욱 아름다움은 사계절 음ㆍ양이 고루 갖추어진 천혜비경이 곁들려져 있는 쌍폭포 이다.

 

계곡 발원지에는 예전폭포와 막소폭포가 있는데 막소폭포의 절벽 모퉁이에서 수심을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깊은 곳에 용이 살았다는 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용소(龍沼)가 있다.

막소폭포 쪽에 있는 절벽을 보면 1519(중종 14)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난() ,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류된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성명 미상[김헌(金獻 : 당시, 밀양박씨 졸당공 선생(손서)의 댁에 의탁하여 악견산 주변에서 생활 함)]과 그의 신진사류(新進士類) 등 많은 유학자들이 이 지역에 피신하여 살면서 새겨놓은 글이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한이 되는지, 또렷하게 남아서 세찬 비바람 속에 시달리며 그 때, 아픈 자국 자국을 전하고 있다.

 

1586년 가을, 남명(南冥) 조식(曺植), 사미(四美) 문경충(文敬忠), 입재(立齋) 노 흠(盧欽), 노파(蘆坡) 이흘(李屹), 탁계(濯溪) 전치원(全致遠), 경부(敬夫) 김우굉(金宇宏) 등 인근의 벗들과 제자와 함께 황계폭포에 유람하여 황계폭포(黃溪瀑布) 2수와 유황계증김경부(遊黃溪贈金敬夫) 2수 시()를 지었다는 추억이 묻혀있고 1600년 여름에 노파(盧坡) 이흘(李屹) 선생이 사우와 제자들이 이곳에 소풍 왔어 새긴“막수동(莫愁洞)”이라는 글자가 있다.

 

1900년 경 막수동 계곡 줄기, 허굴산 등선에 있는 합천군 가회면 월계리 ‘산두마을’ 사람들이 이곳 막소(莫沼)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 위해 물을 며칠 동안 퍼내고 많은 물고기들을 잡았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용의 꼬리가 소() 전체를 흔들면서 잡아 놓은 물고기 들을 모두 물속으로 다시 끌어넣었다. 사람들이 벗어 놓은 옷가지들도 갈기갈기 찢겨져 있고 갑자기 하늘이 잿빛으로 변화면서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과 벼락이치고 굉장한 폭우가 내렸다고 하며 그래서 지금도 가물어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